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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왕여] 오래된 이야기 Feat.김신



뭘 바랬던 걸까.

나는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는 너를 체념하며 내 옆에 웃음 짓는 순백의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 보였다.

네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내 앞에서 울며 서 있을 너를 떠올리곤 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텐데. 그러기엔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 오래 되버렸나 봐.

하긴, 내가 너에게 뭔가를 바란다는것 부터가 잘못된 거겠지.

이 모든게 결국은 나 때문일 텐데.






#
너와 처음 만난건 눈인지 비인지 모를것이 내리던 2월.  개강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추운 날.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OT에서 알게 된 후배와 함께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여자라 혼자 방구하러 다니기 무섭다는 말에 냉큼 '함께 가주마' 약속을 해버린 탓이었다.

이집 저집 우산을 들고 돌아다니는 통에 손이 깨질것 마냥 아파 왔지만 가오가 있지 여자에게 우산을 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보다 우선, 왜 네 우산을 펴지 않는거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후배에게 끌려 다음집으로 향하던 길에 '오빠!' 하는 여후배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퍼특 정신이 들어 후배의 눈 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제법 큰 키에 눈 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얼굴의 너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어..은지. 추운데 뭐 해?"
"나 집보러 다녀. 나 기숙사 나오려고~ 오빠는 추운데 어디가는데~~"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다 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대화에 끼지 못하고 멀뚱히 서있는 내게 그는 가볍게 목 인사를 했고 엉겁결에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길 속으로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다 은지의 옆구리를 툭툭 두어번 쳤다.

"누구?"

"아~ 선배는 처음 보나? 왕여라고 우리과 내 동기 오빠, 군대는 면제랬고 1년 재수해서 나보다는 한 살 많고. 여 오빠가 이번에 OT때 못 왔었구나~ 암튼 이번 학기 우리랑 같이 학생회야. 둘 이 처음이면 소개해 줄 걸"

참 빨리도 말해준다..

아무튼 그 녀석 과의 첫 만남은 이렇듯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다.






#

꽃 피는 춘 삼월은 무슨.
이 놈의 날씨는 왜 이렇게도 변덕스러울까.

신입생 환영회를 위해 멋드러지게 차려 입었건만, 밤이 되니 영하권으로 떨어지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형!"

중저음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어깨에 녀석의 팔이 둘러졌다.

"안 추워? 얼어죽겠는데 아주?"

개강 후, 학생회라는 명분으로 온 갖 행사를 주최하면서 녀석과 나는 호형호제하며 제법 가까워졌다.

녀석은 추운 날 얼굴이 질려있던게 아니라 그냥 생겨먹은 자체가 그랬고, 성격은 꽤나 붙임성 있어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었다.

(물론 잘생기고 큰 키도 한 몫을 했지만, 그건 내가 좀 더 우위였다고 조심스럽게 외쳐보자.)

나 역시 어디가서 기죽지 않는 피지컬과 유려한 외모로 들 끓는 인기를 몰고 다녔기에 녀석과 내가 함께 붙어 있으면 여자들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등 뒤로도 선연히 들려 왔다.

"야~ 오늘 같은 날은 나 처럼 좀 입어줘야지. 넌 임마 너~어무 얼굴만 믿고 설치는 경향이 있어"

"뭐래 ㅋㅋ 내가 형 처럼 입었으면 후배들이 형 따위에게 눈길이나 주겠어? 다~ 형 좋아하는 후배님들 사랑 듬뿍 받으라고 내가 양보하는 거야"

"허허 왕후배님의 사려 깊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알지?"

왕여의 눈이 희번뜩 빛을 냈다.
학생회에 나와 같이 집을 구하러 다녔던 은지와 그 동기 덕화가 일종의 썸(? 그 시절에는 썸이라는 표현이 없어 굉장히 어색하지만)을 타고 있었고 오늘 왕여와 내가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좀 마련 할 작정이었다.

환영회를 마치고 나니 여기저기 이런 난리가 없었다. 나도 신입일때 저랬으려나..

왕여와 은지는 각각 술에 취한 남 여 후배들을 케어해 줄 사람을 찾아 돌려 보냈고, 나와 덕화는 어질러진 자리를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벌써 새벽 1시.

"은지야 늦었다 집에가라~"

"아 선배는 이 시간에 이 어여쁜 후배를 혼자 집에 보내야겠어?"

"덕화야~은지 좀 집에 모셔다 드려라~"

그리 말하고는 칭찬 받으려 왕여를 바라보니 얼굴이 뭐 씹은거 마냥 구리다.

'아 왜? 뭐?'

둘이 같이 집에 가면 좋은거 아닌가?! 이만하면 자연스럽지 않았나? 솔직히 김신 천잰데?

"내가 왜? 나 곧 막차야"

문제는 덕화 저 새끼지. 눈치 드럽게 없는 새끼.
아니나 다를까 왕여 표정이 한 층 더 험악해졌다.

"다 같이 은지 집에 데려다 주고 덕화는 우리 집 가서 자고 가. 이미 늦었어 너"

왕여에 말에 울상이던 은지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부담스러웠다 이 말인가.. 세상 참 갑갑하게 산다.


결국 넷이 나란히 걷는 이상한 상황.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시려운지. 나 집에 보내줘라 왕여. 왜 나까지 이 거릴 걷고있는거니.

야속한 마음에 왕여를 힘껏 노려봐 주는데 갑자기 왕여가 급히 폰을 꺼내들었다.

"어 민재야.. 어..어.  지갑? 그래 내가 지금 가서 찾아보고 연락줄게"

이상하다 폰 안 울렸는데.

"덕화야 은지 좀 부탁하자. 민재가 지갑을 두고 갔대. 나랑 형이랑 가서 찾아 볼 테니까. 있다 내 방으로 와!!"

순식간이었다.
민재와 은지가 뭐라 대꾸 할 틈도 주지 않고
왕여가 내 팔을 잡아 끌며 급히 돌아서 달렸다.
운동장을 지나 공대 건물을 지나서야 멈춰 선 녀석과 나.
갑자기 달린 탓에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야. 너 폰 안 울렸잖아"

"이봐 형씨.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그 얼굴로도 연애를 못하고 있지"

여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일전에 술 마시고 '사실 나 아직 첫키스도 못해봤어' 하고 울어재낀 후로 계속 저런 식이다.

아 말하는게 아니었어. 지금 살아있는게 아니었어. 하필 그 얘기를 저 자식한테 털어 놓다니..

나는 주변에 여자가 넘쳤지만 연애랑은 거리가 멀었다. 왜지. 잘생김이 뛰어나 남친으로는 부담인걸까. 그런류의 고민을 왕여 자식에게 털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얘기는 저 자식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빠져주는거야 이럴 땐"

아니 뭐가 자연스럽다는 거야. 아까 내가 훨씬 64315배는 자연스러웠던것 같은데.

"근데 형, 궁금하다. 따라가보자"

300m를 전력 질주로 달려와 놓고는 궁금하니 돌아가잖다. 이 녀석은 또라이가 확실하다.

결국은 왕여에게 질질 끌려 은지 집으로 다시 향했다. 80m 남짓 뒤에서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몰래 두 사람 뒤를 밟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 별 대화도 없이 무작정 걷고만 있다. 그래도 아까 넷이 갈 때 보단 부쩍 팔과 팔 사이의 거리가 좁아진것 같았다.

"형, 이리로"

왕여가 최대한 소릴 낮추며 어두운 곡몰으로 나를 끌어 당겼다.

"여기가 지름길. 먼저 가서 숨어서 보자"

이 새끼 진짜 변태 또라인데?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왕여와 나는 참 잘 맞는다. 이런면에서.

은지 원룸 앞 주차장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꼬라지가 퍽 우스웠다. 남의 연애사에 우리가 왜 이 난리인지.
어이가 없어서 실웃음이 나는데 갑자기 주저 앉혀 졌다.

"아씨 너!"

왕여가 갑자기 손을 잡아 끌어 내린 탓이었다. 어깨가 빠져나갈 것 같아 소리 지르려니 이번에는 입을 막아 온다.

"여기가 우리 집.. 같이 와줘서 고마워."
"..어.. 어."

차 넘어로 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가봐 늦었다"
"너 들어가는거 보고 갈게"
"아니 너 먼저 가는거 보고 들어갈게"

두 사람 굉장히 삽질중이었는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신경은 잡힌 손과 막힌 입, 그리고 눈 앞의 눈썹을 찡그려가며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에게 온통 쏠려 있었으니까.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자니 녀석이 다시 잡힌 손을 잡아 당겨 왔던 골목으로 도로 빠져나왔다.

"후아.. "

녀석의 입에서 참았던 숨이 토해졌다.

"무슨 쌍팔년돈 줄. 답답하다 진짜"

혀를 차던 녀석이 곧 크게 웃었다.

"완전 재밌다. 이따 덕화 놀려줘야지"

그 모든게 자꾸 느리게 보였다.

한껏 끌어 올려진 입꼬리를 보고 있자니 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녀석은 아랑곳 않고 또 다시 손을 잡아 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형도 그냥 내 집으로 가자. 덕화 오면 뒷풀이 하게."

"..얌마.. 손 좀."

"안돼. 너 지금 손 너무 차가워"

"......너 아니고 형"

내 핀잔에도 녀삭은 대꾸 없이 제 점퍼 주머니 속으로 잡힌 손을 구겨 넣었다.

한 걸음 앞서 걷고 있는 녀석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집에 도착 할 때 까지 뒤돌아 봐주지 않았다. 몰론 잡힌 손도 그대로였다.










#

"형은 누구 마음에 드는 애 없어?"

마지막 시험을 치고나와 움직일 기운도 없어 수의대 앞 벤치에 드러누웠다. 벚 꽃잎과 함께 날리는 바람이 예쁘다는 따위의 생각을 할 때 왕여가 묻는 말이 었다.

"글쎄..."

"이번에 MT 조 내가 짜거든, 형이랑 같은 조 해달라고 조르는 애들 많은데"

역시 이 놈의 인기는 날로날로 커져가는군.

".. 희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또 희번뜩. 그것 좀 하지 말래도.

"최희진? 이번엔 진짜 좀. 어? 안그래도 희진이가 형 좋아한다던데 굳 럭."

녀석은 또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가방에서 노트를꺼내 MT 조를 수정하고 있었다.

"..넌?"
"나?"
"그래.. 너는? 누군데?"

그제서야 노트에서 눈길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는 녀석.
보기 좋게 입꼬리가 올라 갔다.
웃을 땐 세상 제일 예쁘지.

"비밀. 잘 되면 그 때 얘기해 줄게"

나는 조마조마했다.
방금 내 심장이 저 땅 끝까지 떨어진 것 같은데 그 소릴 녀석이 들었을 까봐.

개강파티, 그 날 밤 이후로 딱히 별 일은 없었다. 녀석은 어느날과 다를 바 없었고 나에게도 그 날은 술 기운에 '기분이 조금 이상했던 날' 정도로만 기억 됐다.

그런데 그 날 밤이 내게는 다른 의미로 남았다는걸 방금 깨달은 것 같다.








#

MT고 희진이고 뭐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녀석의 그녀가 누군지 알 길이 없으니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잔뜩 날이서 애꿎은 녀석만 괴롭혔다.


'야, 왕여. 애들 불러 모아'
'왕여, 가서 애들 4시 까지 집합하라 그래'
'야 왕여! 너는 가지 말고 나랑 이거 해'
'왕여야 이거 좀 들고 서 있어라!'
'왕여야 나랑 슈퍼 가자. 닭이 모자르다!'
'왕여야!!!!!!'


내가 생각해도 좀 치졸했다 싶을 만큼 그 누가 여에게 말이라도 걸라치면 잽싸게 녀석을 불러 일을 시키거나 내 옆에 꼭 붙들어 뒀다.

녀석의 얼굴에 깊은 빡침이 느껴졌지만, 나 역시 그런 그녁의 사정을 봐 줄 만큼 여유롭지 못 했다. 원래가 짝사랑이라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나는 알량한 학생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녀석을 내 옆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야! 김신!"

술에 취한 여가 결국엔 내 멱살을 잡았다.

"ㅉㅉ 이번엔 신이 형이 잘 못한거 맞으니까 가서 몇 대 터지고 와"

덕화 자식놈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여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허허 왕여야. 형이다. 이거 놓지 못하겠니?"

"뭐 이새끼야아?"

"허허.. 형 한테 새끼..라니"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듯했다. 평소에 잘 취하지도 않는 녀석이 제 옆에서 죽일듯이 노려보며 소주를 병나발 부는데 지은 죄가 있으니 차마 말리지 못한 결과가 참으로 처참하다.

"니가 그러면 내가 무슨 얼굴로 희진이를 보냐고!! 희진이 아까 울겠더라 아주!! 왜 니네 조에서 안 처 먹고 우리 조에 와서 지랄이야!!"

"하아.. 야 여기서 걔 얘기가 왜 나와"

"니가 조 짜달라며!!"

"아 그 땐 희진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됐어?"

급한 마음에 둘러대니 녀석이 입을 꾹 다물고 또 노려본다. 그렇게 귀엽지 말아 줄래?

"우리 조에 있어? 누구지? 하나? 은주? 지영...이는 니 스타일 아니고..아, 누구?"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퍽 귀여워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아 근데 나 형이야. 형 해봐 형.

"아아아아아 누구냐고오오오!"

"있어 키 크고 허연 애. 너 취했다. 자러 가자."

술자리가 시작되기전 어떻게든 먼저 여를 재우려고 따로 잘 곳을 마련해두길 잘 했지.

녀석는 '키 크고 허연 애'를 중얼거리며 나를 노려 보다 잠이 들었다.

오늘의 임무를 완수 했어.
미션 석세스를 외치는 순간 반짝 녀석의 폰에 문자가 수신됐다.

[오빠 어딨어요?  -06혜민-]

너구나..









#

"혜민이가 밥 사달래, 너도 가자"

"난 저번주에 사줬어"

여우 같은 자식. 눈 하나 꿈쩍 않는것 보소.

"아니 나는 걔랑 별로 안 친하단 말이야. 너는 좀 친하다며, 니 것 까지 내가 사줄게"

"난 오늘 덕화랑 06 남자애들 밥 사주기로했어. "

라며 홀연히 강의실을 나가버리는게 아닌가.
김혜민 앞에서 우리의 다정함을 뽐내주려했건만! 한 남자를 두고 두 남녀가 벌이는 치정극. 난 걔 싫다고!!


김혜민은 아주 고.맙.게.도 동기들을 많이도 모셔와주셨다.

"우와 선배님~ 오늘 우리 다 사주시는 거예요?"
"뭐 먹고 싶니? 선배가 다 사준다 오늘! 하하"


남자는 가오지.





뭔 애들이 이렇게나 먹는 건지. 어려서 그런가.. 얘들아 며칠 굶고 왔니?
쫑알 쫑말 지들끼리 정신이 없다. 아주.

그때 마침 여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애들 왕창 몰려 갔다며, 돈도 없으면서 또 비싼거 먹이러 갔지?! -또변-]

여야 내 텔레파시를 받은 것이냐!
아 목소리 듣고 싶어 안되겠다 싶어 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들 있어, 아~주 중요한 전화가 와서"

아 김혜민 노려보지마. 튀는거 아니야.



"여야! 어디냐? 여기 애들 장난 없어 내 돈 ㅠ"

-ㅋㅋ 그러게 적당히 먹이지 가오 잡느라 또 썰러 가셨구만.

"내 알바비 다 나가게 생겼다. 그 쪽은 어때?"

-여기도 어마어마해. 맘 같아선 설사약이라도 넣고 싶다. 내가 ...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숨통이 트이는것 같았다. 아.. 나 진짜 중증인가 봐.

재잘거리는 목소리에 하마터면 보고싶다고 내뱉을 뻔했다.

-#₩%!.. 형! 내 말 듣고 있어?

" 어.. 어 왜"

-맙소사 우리 20분 넘게 통화했어. 덕화가 나 찾아.

"걍 무시해. 딱 10분만 더. 어?"


너머 들려오던 목소리가 끊겼다. 찰나같은 침묵에 방금 뱉은 말에 후회가 차 올랐다.


-..........형.

다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지만 이대로 내가 덜컥 통화를 종료해버릴까봐 초조했다.

-.. 혜민도 형 찾는다. 문자왔어.

걔는 나 한테 전화하면 될 걸 왜 너한테 날 찾고 지랄이야.

-......덕화랑 갈테니까 20분 뒤에 던킨 앞에서 봐.







#

"형! "

저 멀리 덕화가 손을 번쩍 들며 인사를 건네 왔지만 내 눈에는 너만 보였지. 내가 아닌 내 옆에 서 있는 조막만한 계집애를 보며 미소 짓는.

나도 몰랐지 나한테 이 정도의 질투심이 있는지를 말이야.

"여~김혜민! 넌 왜 있냐?!"

"선배님들 오신다길래 인사라도 드리고 가려구요"

하며 여를 보며 샐쭉 웃어보이는데 보통은 아니구나 싶었다.

질문은 덕화가 했는데 왜 여를 보냐.

"오빠, 저 가기전에 저기 저 솜사탕 하나만 사주세요"

김혜민이 여의 소매를 잡고 이끈 곳은 우리 학교 명물인 대왕 솜사탕이었다. 아저씨 기분에 따라 그 크기가 무한정 커질때도 있고 썩은 사과 마냥 작을때도 있었다.

"아저씨 솜사탕 하나 주시겠어요?"

"어허! 이쁜 총각이 왔구먼? 여자 친구 주려구?!"

아저씨 오늘 기분이 과하게 좋으신 듯.

"둘 이 손 잡으면 더 크게 만들어 주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환호에 김혜민이 왕여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크고 하얀 손을 잡아채는 건 내 쪽이 조금 더 빨랐다.

"아 뭐여? 이 짝이 아니고 그 짝이었어?"

아저씨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김혜민과 왕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 쪽은 열 받아서, 한 쪽은 쪽 팔려서.

"아이 씨. 미쳤어? 이 손 안 놔?"

"어허~ 아저씨 말 못 들었어? 손 잡으면 더 크게 만들어주인다 잖아. 그쵸 아저씨~?"

"암~ 물론이지이~ 사랑해~ 하면 더 크게 만들어 주고"

다시 한 번 깔깔깔. 여야 그렇게 눈으로 욕하지 말아 줄래? 나까지 부끄러울라 그래.

"들었어? 혜민이 솜사탕 더 크게 만들어 줘야지!"

"진짜 죽인다 너"


부릅 뜬 눈을 마주 보다 힘주에 네 손을 고쳐잡았다.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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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렇게 큰 솜사탕을 나는 본 적이 없었지.
그걸 손에 들고 울상이 된 김혜민의 얼굴이 떠 올라 술 잔을 들이키는 종종 어찌나 웃기던지.

다 먹지 못 한 솜사탕이 아직 녀석의 손에 들려 있었다. 솜사탕과 소주.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내가 어? 니가 막 둘로 보이고 어? 예쁜게 두 개나 있고 존나 좋아.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쪼개?"

"ㅋㅋ 아씨 진짜 웃긴다. 솜사탕 줘 솜사탕!"

"안돼! 너 아까 엄청 먹었어. 더 먹으면 당뇨 와. 너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 줄 모르지?"

"미친~ 야 그거 버리지마! 내일 다 먹을거야"

"내일이면 다 녹고 없어"

"그럼 지금 먹을래~"

내가 자꾸 달라고 조르자 한 움큼 떼어내더니 지 입으로 쏠랑 집어 넣어버린다.

"으악! 달어!!"

단거에는 질색하는 녀석이 표정이 보기 좋게 찡그려졌다. 결국 다 집어 넣어지지 못 한 솜사탕이 녀석의 입술에서 나풀거렸다.

어쩜 이래 너는? 일부러 그래? 나 죽이려고?

"그럼 내가 먹을래"

그냥 앞 뒤 생각 없이 녀석의 얼굴을 감싸 안아 입술을 맞 대었다 떨어져 나왔다.

안그래도 큰 눈,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가 보였지만 그 때 나에겐 그런 건 하나도 중요 하지가 않았다.


"달 다. 달아 여야."


놀란 마음에 미동 없는 녀석의 바라 보다 조심스럽게 뒷 목을 당겼지만 역시나 꿈쩍을 않는다.

그럼 내가 가지 뭐.

이번에는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꾹 맞물었다. 도톰한 네 입술의 촉감이 느껴져 숨을 한 번 들이 삼켰다. 이내 녀석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예쁜 눈이 감겼고 나도 따라 눈을 감았지.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급히 찾아 들었다. 자꾸 도망가려는 혀를 입술로 잡아 깊게 빨아 들이니 어깨를 그러쥐는 녀석의 손길이 느껴졌다.  얽혀 드는 혀에서 달큰 한 향이 쏟아져 넘어 왔다.


다행이도 녀석은 나를 밀어내거나 경멸하는 말을 내뱉거나 하지 않았다.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아. 내 마음.

"난... "

말을 잇지 못하는 너를 끌어 품에 안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쪼르륵 딸려와 안기는 네가 왜 그렇게 좋던지. 솔직히 첫 키스 보다 그렇게 안기던 네가, 나는 더 떨리고 설레더라.


내 첫 입맞춤, 첫 키스가 너여서 나는 좋았어.
넌? 너도 그랬어?

종소리 그런건 잘 기억 안나는데, 그냥 달아 죽겠더라. 네가 너무 달아서 나는 죽을것 같았어.




#
처음이 어려웠지. 그 다음은 별거 없었어.
눈만 맞으면 입맞춤 하느라. 원래 늦바람이 무서운거라잖아.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러냐며 입술을 앙 다물어 버리던 네 모습마저 좋아서 빈 강의실, 비상계단, 2층 화장실 맨 끝 칸 너를 끌고 다니며 쪽쪽 입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지.

밤새 네 방에서 술 마시고 놀다가도 덕화 몰래 도둑 뽀뽀를 하고, 내 옆에서 잠든 네 얼굴을 어루어 만지면 눈 감은 채 웃어주던 니가 나는 그렇게 좋았는데.






"이게 뭐야?"

"뭐긴 뭐야 꽃 이지"


늦은 새벽 갑자기 네게 갑자기 문자가 와서 후다닥 달려나오는 길에 공대 앞에 핀 보라빛의 꽃 향기가 너무 좋아 나뭇가지 몇개를 엮어 녀석에게 건냈더니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누가 꽃인거 모르냐 병신아"

"천하의 김신님께서 너를 위해 친히.."

"이거 공대 앞에 그 꽃이지?"

"...하하"

"너 내가 신고할거야. 이것도 일종의 기물파손.."

쨍알거리는 녀석의 목소리도 좋지만 기분이 좋은건지 살짝 올라간 너의 붉은 입술이 더 좋아 그새를 못 참고 마주대니 프스스 웃음을 뱉어냈다.


"라일락이야, 그 꽃 이름."




그 때는 꽃 말 그런거 몰랐는데.
이제와서 찾아보니 라일락 꽃 말이 '젊은 날의 추억' 이더라 다른 말로는 '첫사랑' 이래.

이렇게나 우리에게 어울리는 꽃이 었어 그 꽃.



날이 새도록 담요 하나에 의지해 이야기를 나누다 너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녀석에게 주었던 그 꽃이 벤치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길래 다시 냉큼 주어 왔다.

식당에서 물컵을 가져다가 꽂아 두고는 너 보란듯이 과독서실 책상위에 올려 뒀지.


「니가 버리고 간 내 마음 내가 주워왔어
매정한 새끼. 어떻게 나를 버리니 흨흨

금방 온다더니 왜 안오냐

보고 싶은데

이 사탕은 김혜민이 준거지 또
내가 먹을 거야

어디야. 어딘데,



사랑해」


네 자리에 앉아 너를 기다리며 나름 로맨틱하게 편지를 끄적이고 있는데 낯선 향에 눈길을 돌리니 김혜민이다.



"선배, 저랑 얘기 좀 해요"








아주 레이저 나오겠다.
노려보는 서슬퍼런 시선에 그렇게 떳떳하지 만은 못해 애꿎은 빨대만 씹어댔다.

이건 녀석의 버릇인데, 아 또 보고싶다. 어디야 왕여 새끼야. 나타나줘. 뽀뽀해줘. 섹스해줘.



"여 오빠 놔주세요"


김혜민의 입에서 나오는 녀석의 이름에 내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오빠가 나는 안된대요... 그거.. 선배 때문이잖아요"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말을 이어가는 김혜민의 말을 듣고 앉아 있기가 괴로웠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김혜민"

"나 다 봤어요."

김혜민이 어디서 뭘 본건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불 보듯 뻔했으니까. 전세가 역전됐다.


[형 어디야 나 좀 봐 -유덕-]


덕화의 문자가 이 게임은 처음 부터 내가 지게되어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절대 비밀이야. 덕화도 은지도 안돼. 알려지면 형이나 나나 끝이야-


머리속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경보등 마냥 윙윙거리며 들려 왔다.


어쩌지.. 여야.






#

"지금 꼬라지를 보니 완전히 헛소리는 아닌가봐?"

김혜민을 뒤로하고 급히 카페를 빠져나왔다.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런데 갈 수 가 없잖아.


급한 마음에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사 계산도 하지 못하고 들이켰다.

학교 근처는 얼씬도 못하겠어서 택시를 잡아타고 덕화네 동네로 향했다.



".......그래서 어쩔건데"

"......네가 그 녀석 옆에 좀 남아줘라."


결과는 이미 정해진거였으니, 큰 망설임은 없었다. 녀석은 괜찮을거야. 애초에 나 혼자 시작한 마음이었어. 녀석은 똑부러지니까 나같은거 금방 지워낼거야.

근데 나, 내가 괜찮을 자신이 없어.



덕화 집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쓰린속을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켜 탁자위에 올려둔 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통화 38건]

이 중에 녀석의 전화는 5개.
나머지는 덕화 2개와 전부 장은지.
누가 보면 장은지가 내 애인인 줄.

그 와중에 음성 메시지가 하나 있다. 너 일까.


「형, 아직 자? 사실 어제 김혜민이 날 찾아왔더라. 자기 다 알고 왔다며. 일단 소문이 퍼진건 아닌 모양이야. 자기도 여 형이 곤란해지는건 싫대. 아직 여 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고, 형 찾길래 그냥 형 고향집에 일있어서 급히 내려갔다 그랬어. 정신 좀 들면 연락해」


불행중 다행인건가..싶은데 문자가 수신됐다. 녀석에게서.

[내가 등신 같아? 학교가 싫으면 내가 갈게 10시까지 덕화네 사거리에 있는 포차로 나와
안오면 내가 죽었다는 속보를 들려줄테니까]


그래 너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았지. 내가 연락이 되지 않는 순간 아마 너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토록 우려하던 순간이 코앞에 닥쳐왔음을.



지금이 9시. 일단 씻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네게 눈물 자국같은 갈 보여줄 순 없지 않은가. 네 기억속에 난 마지막까지 멋지고 싶은데, 그건 이미 늦었으려나..







#


늦지않게 도착해보니 언제부터 와 있던건지 녀석의 테이블 위로 소주 한 병이 벌써 비어 있다.
내 인기척에도 올려다 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술병을 쥐어 올린 녀석의 손이 유독 창백해 보였다.

별 말 없이 녀석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하룻밤새 너의 얼굴이 많이 상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한참을 말 없이 술을 들이키는 녀석을 바라만 보고있은지도 수 분. 너의 입술이 겨우 나를 향해 움직였다.



"이렇게 도망칠거였어? 그래? 너?"

"....."

녀석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 앉았다. 나도 저럴까 싶어 급히 소주를 털어 넣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이렇게.. 끝이야?"


녀석의 목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담백해서 되려 내가 목이 매여왔다.

"우리가 무슨 시작이라도 했어야 끝을 내지."

녀석의 목소리 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이 가득 나를 향했다.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정말 최악이다. 정말.


"네가 더 무서워했잖아. 누가 볼까봐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 니가 도망가기 바빴잖아. 난 항상 쫓아다니고"

"...."

"내가 너 너무 사랑해서 그만하는 걸로 하자. 너 못 버텨.  난 니가 무너지는거 못 봐. "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너는 가만 손을 내밀었지.



".. 잡아. 나 너 안 놔. 나 너 사랑해."



난 내밀어진 녀석을 손을 가만 접어 품에 돌려주었다.



"너 그거 아냐? 사랑한다는 말. 오늘 처음 해준거"


"..."



"그거면 됐다."


나는 끝내 대답이 없는 너를 혼자 남겨두고 먼저 가게를 빠져나왔다. 몇걸음 옮기지 못하고 골목으로 들어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니가 좋아해서 바꾼 담배인데, 이것도 오늘까지만 피워야겠지.

아 씨발.. 너도 안 울었는데..



사랑도 이별도 일방적이어서 미안.
나 밀어내지 않고 받아 준 너를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었어 내가.

그런 너를 끌어 안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저 아래로 뛰어 들 순 없잖냐.

도망가자.

너 꿈도 많잖아. 나같은 새끼랑은 다르게. 공부도 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어했잖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너를 죽이겠냐.

사랑해, 사랑한다. 여야.





#
죽고 못 살것 처럼 붙어다니던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 죽이지 못 해 안달이난 것 처럼 갈라서자 과내에 별별 소문이 나돌았다.

김신이랑 왕여가 술 먹고 싸워 서까지 다녀왔다더라.
김신이 급전 빌려가서 왕여한테 안 준다더라.
왕여가 좋아하는 여자를 김심이 꿰찼다더라.
아니다, 그 반대라더라.


다들 상상력도 좋으시지.


이런 저런 소문은 기말고사가 시작 되면서 차츰 시들해져 갔다.

멀리서 민재와 걸어오고있는 녀석은 다행이도 썩 괜찮아 보였다. 잘 웃고, 잘 먹고.

나도 그래 보여야 하는데.


멍하니 정신을 놓고있다가 어깨가 부딪히는 느낌에 푸닥 정신을 차려 보니 하필 녀석이다.
떨어진 책을 정리하며 일어서는 녀석에게 뭐라 해 줄 말이 없어 입술만 달싹였다.

"정신 좀 차리지?"

"..미.. 미안합니다"

당황해서 내 뱉은 말에 녀석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미안..합니다? 참나.. 퍽이나 미안하시겠습니다 선배님"

"이.. 씨발새끼가."

"누군 욕 못해서 안하는거 아니거든"

"아 선배 왜 그래!!  선배님 죄송합니다. 왕선배가 지금 시험치러 가는 길이라 좀 예민한 것 같습니다.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좆같네. 진짜.

그래 나 미워해. 실컷.





결국 그날 시험을 말아먹은 탓에 급히 계절학기를 들어야 했다.

9시 수업인데 기숙사에서 제일 먼 자연대 건물이라 대충 모자를 눌러 쓰고 달려나갔다.


아 근데 왜 하필 또 저기 니가 오고있는건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머리를 감지 못해 급히 물러쓴 모자와 다 늘어난 반팔티와 추리닝 바지. 반면 나와는 다르게 저 자식은 아침부터 뭘 저렇게 또 빼 입은건지. 하긴 그냥 티 하나를 걸쳐도 태가 남 달랐지.

여전히 예쁘다. 넌.



100m..80m.. 점점 좁혀지는 거리. 너도 날 봤을 텐데.


인사라도 해 볼까.


기대가 무색하게 눈길 한 번 없이 지나쳐 가는 네 손목을 붙들어 세워 키스하고 싶은 내가 미친놈인 거지. 그런거지. 응? 여야...

너를 아침 마다 마주 할 자신이 없어 그길로 돌아가 수강취소를 했다. 안 보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긴 방학동안 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네가 더 선연히 떠오르니.. 나 죽어야 할까?





"그러지 말고 연애를 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술잔을 들이키는데 덕화놈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연애나 하란다.

"지금 내가 그게 되겠냐.."

"억지로라도 만나봐. 은지 아는 동생 소개해 줄게. 그게 두 사람한테 모두 좋겠어. 여 형도... 소개팅 하고 그러던데"


개새끼 넌 진짜 나쁜새끼다.
정말 나 사랑은 했니.



"이제 그만 지워"




결국 덕화와 은지의 성화에 못 이겨 소개팅을 하게 됐고 그 여자가 지금 내 옆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민재가 형 은탁이랑 있는거 봤나봐. 어제 다 같이 술 마시는데 그러더라고.'

'어.. 어디서 봤지? 아 뭐, 좀 더 만나 보려고'

'여 형도 있었어'

'...뭐래?'

'평생 연애 고자로 죽을 줄 알았더니 축하해주더라 헤어지지 말고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래'

그 말은 전하는 덕화놈의 목을 쥐고 비틀고 싶었다. 넌 대체 누구 편이냐.


그런데 나 니 말은 또 드럽게 잘 듣잖아. 
그래서 결국 이렇게 결혼까지 해.
어쩜 그렇게도 꽁꽁 숨어버렸는지. 니 얘기 들려오지도 않아.


오래된 너와 나의 이야긴 늘어나 닳아져버린 테잎처럼 이젠 들을 수도 없겠지.

더 깊숙히 묻어둘 걸.
널 꺼내보고 싶었던게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내가 지워버린 장면이 그리워.
완성하지 못한 우리 이야기. 그 날 네 손을 잡고 세상에서 도망쳤으면 너는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했을까.
우리가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을까.

더 깊숙히 묻을게.

철 없던 그 시절 내 전부였던 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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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요섭, 리차드파커스의 "이야기' 들으면서 썼어요.

마지막이 엉성한건... 제가 아직 이별 후의 그 사람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누군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거라.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은 흔한 얘기.

여의 이야기도 있지만 아마 못 쓸것 같습니다. 나 멘탈 나갈지도 몰라서.

그 시절의 신이 여를 사랑했다는 제 절실한 믿음을 담아, 많이 아파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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