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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김신왕여] / [깨비사자] 욕심

깊은 산 속 옹달샘 2017. 1. 14. 20:14
신은 마주 보고있는 사자와 시선을 맞추며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저보다는 훨씬 주량이 쎈 사자의 곁에는 빈 캔들이 나뒹구르고있지만 사자의 눈빛은 취기라곤 찾아보기 힘들만큼 또렸하게 신을 향하고 있었다.

요 며칠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밥도 마다하고 그 좋아하던 드라마도 마다한 채 신을 바라보며 술만 들이키고있는 사자였다.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었어? 아님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거야?..
니가 내 여동생 김선이 맞아? 그래서 그래?

처음에는 그런 사자가 걱정스러워 시덥잖은 농을 건내도 보았으나 사자는 대답이 없었고 그런 사자에 신도 지쳐 입을 닫아버렸다.

어색한 침묵속에 맥주를 홀짝이던 신의 손끝에서 스믈스믈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깨비 신부의 소환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다녀올게. 술 그만 마시고 자"

역시나 대답이 없는 사자는 흩어져가는 신을 외면하며 몸을 틀었다.


신이 떠나고 더는 비출것이 없는 사자의 눈동자는 공허하게 빛을 잃어 탁했다.
맥주로 취하기는 힘들것 같다는 판단에 급기야 양주를 꺼내 들었다.

부정하려 하면 할 수록 뭉근했던 정체불명의 감정은 점점 또렷해져 그만 받아들이라며 김신의 칼날 처럼 날카롭게 사자의 가슴 한켠을 파고들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장을 보고, 맥주 한잔 하며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답답해하고, 나란히 앉아 콩나물을 다듬던, 남들에게는 평범할 그 날들이 300년을 홀로 외롭게 지내왔던 사자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다.

도깨비는 이 것을 '우정'이라 했다.
어쩌면 사자에게도 그 것은 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하는 순간들이 익숙해지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오면 불쑥 시비를 거는 도깨비가 짜증이 나다가도 따뜻한 마중에 고마웠고, 그가 불멸의 삶을 끝낸다면 조금은 심심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던 그때에는 분명 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집에 그가 없다던가, 지금 처럼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면 어김없이 찾아 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어두운 감정은 조금씩 사자를 좀 먹어갔다.

우습지도 않은 욕심이 들었다.

그 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짧은 한숨이 사자의 붉은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저가 생각해도 기가찬 일이었다.

저승사자 주제에.

전생에 지은 죄의 무게조차 가늠가지 않는 저승사자의 신분이다. 누군가에는 지독한 고통이었을지도 모를 자신의 존재.
그런 자가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는게 그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뭐야..여즉 마시고 있었어?"

익숙하고 또 반가운 음색에 고개를 드니 언제 돌아온건지 도깨비가 제법 사나운 인상으로 사자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렇게 보고있자니 속도 없이 좋다.

"왔네"

도깨비가 사라기지기 전과는 다르게 사자는 비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아는 채를 해왔다.

"너...말이야. 무슨 술을.."

사자 옆에 반이나 비워진 독한 위스키 병을 발견한 도깨비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이리저리 사자의 상태를 살피러 몸을 낮추자 그 언젠가 신이 선물했던 소녀의 향수 향내가 옅게 사자의 코 끝에 닿았다.

도깨비 신부를 만나 불멸의 삶을 끝내고자 소망했던 도깨비.
그녀를 사랑해 1000년의 소망마저 포기해 버린 어리석은 도깨비.
사자가 사랑하는 그 도깨비.

결국 스르륵 넘어가는 사자를 안아 든 신의 얼굴에도 수심이 차 올랐다.

너를 어떡하면 좋지..

................................

팔에 검은 코트를 걸친채 집을 나서는 사자의 얼굴이 지난밤 독한 술기운때문인지 유난히 창백했고 붉던 입술은 색이 바랬다.

사자의 어깨 위로 토독토독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려앉았다.

빗길에 버스가 전복 될 요량인듯 했다.

출근 시간이라 많은 사상자가 날거라는 사자의 예상이 틀리지 않음을 빙증하듯 많은 차사들이 명부를 손에 쥐고 인도할 망자를 기다리고있었다. 

"선배님, 오늘 꽤 큰 사고가 날 모양입니다. 타 관할 구역의 사자들이 지원을 나올정도니. 저 이렇게 큰 사고는 처음입니다."

세 기수 아래인 후배 차사는 큰 사고에 긴장을 한 탓인지 상기된 목소리로 쉴새없이 사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자는 건성건성 대꾸해주며 손에 들린 명부에 적힌 갓난아이의 이름을 곱씹었다.

아이와 엄마 인가..

사자는 아이를 인도하는일이 정신적으로 가장 고되었다. 현생에 대한 기억도 미련도 없을 작은 아이들은 죽고싶지 않다며 주저앉아 우는 일도 없었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며 이리저리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다니는 일도 없었지만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짧은 생이 안타까워 그러했다.

"선배님! 저기 버스 옵니다!"

사고가 날 예정인 버스가 사자들 앞에 멈춰 서자 사자는 제 할당의 망자가 될 여인과 아이를 찾아 차안을 찬찬히 살폈다.

"아저씨!"

도깨비의 신부.

사자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도깨비 신부를 발견한 사자는 뭔가 잘 못 됐음을 직감했다.

"누구 지은탁 명부 가지고있어?"

다급한 사자의 외침에 모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뿐이었다.

"...오늘 사고 안나겠군."

"네?...어? 선배님 저 버스! 어라? 그냥 갑니다!"

예정되어있던 사고는 일어나지 않고 그런 운명 따윈 처음 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듯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달려갔다. 후배 차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지만 건너편 정거장에 서 있는 도깨비에게 사자의 시선이 닿았다.

'얘기 좀 해'

신의 음성이 사자에 귀를 파고듬과 동시에 벼락이 내리쳤다.

 찻집으로 들어서 젖은 코트를 벗어 거는 동안 뒤따라 들어선 신이 사자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돌려세웠다.
본인이 화가 났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거친 몸짓에 사자가 낮게 신음하며 다시 손목을 뺏어내었다.

"무슨 짓이야?"

" 그건 내가 물어 볼 말 같은데. 지금 니가 무슨짓을 한 줄이나 알아?"

"은탁이 사고 왜 말 안했어"

도깨비가 하고있는 오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게 된 사자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도 몰랐어"

"니가 몰랐다는게 말이되?"

"...명부에 지은탁은 없었어. 그저 우연히 그 운명에 휘말린것 뿐. 네가 구해낼거였으니까...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나게됐군"

사자에게서 흘러나온 냉기에 주변에 하얗게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얼어 붙는 공기에 도깨비는 그제서야 제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퍼특 깨달았다.

"오해 한 거. 미안하다. 마음이 급해 무례를 범했군."

신의 제법 진중한 사과에 그제야 마주친 사자의 눈동자는 화가났다기 보다는 슬픔 같은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먼저 시선을 피해버린 신의 눈에 붉게 물든 사자의 손목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신의 손길에 화상을 입은 모양이다.

"나 역시, 지금 당장 기타누락자를 데려갈 생각은 없어..."

네가 원하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너를 위한 유일한 일 일테니..

차마 내뱉지 못 한 뒷 말이 써 사자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일그러 졌다.

"그만 돌아가줘. 네 덕에 할 일이 많아서."

행여나 신이 제 얼굴을 볼까 돌아선 사자가 찻 잔을 들어 닦기 시작하자 신은 할 수 없이 찻집 문을 나섰다.

차라리 너를 모르던때로 돌아갔으면..

사자의 손에서 떨어진 찻 잔이 땡그르르 바닥을 굴렀다.

900년을 넘게 살았다는 도깨비가 모를리 없었다.
저와는 다르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교류해온 그는 지금 사자의 마음을 몰라 볼리 없었다.

300년을 살아온 사자도 모를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그 의미를.
대답 없는 대답의 의미를.

그제야 아파오는 손목을 붙잡고 무너져 내리는 사자에게 오늘 하루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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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보면서 드문드문 든 망상과 드라마를 짜집기한 망작.

다음편도 쓰고있지만 고추바사삭이 되어 사라진 도깨비때문에 충격이 너무 커서 암것도 못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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