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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김신왕여] / [깨비사자] 운명

깊은 산 속 옹달샘 2017. 1. 16. 00:11

3. 세번째 이야기 - 마주하다.
(전작들과 이어지지마 꼭 잃지 않으셔도..)
(급히 올린 만큼 망작이라 계속 손대는 중 ㅠ)





'그 자가 왕여다.'



소름끼치는 박중헌의 목소리가 신의 머릿속을 계속 때려왔다.

네가 왕여라니..
내 천년의 분노가 너였다니..

어제 만난 자가 박중헌이었을까. 그 자가 맞다면 필시 왕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내 과거를 읽어낸 넌 어디까지 알게 된 건지. 정말 네가 왕여가 맞는건지...

신은 쓰러진 은탁을 자신의 방에 뉘이고는 곧장 사자의 방을 찾았다.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그의 찻집으로 향했지만 사자는 그 곳에도 부재했다.

설마..



#


사자는 신의 정갈한 글체로 왕여라 적힌 위패를 바라 봤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저 이름을 적고 매년 제를 지냈을까. 분노였을까. 연민이었을까.

신의 기억속의 어린 왕은 지금의 저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옆에 분명 박중헌이라는 자가 있었다. 나를 왕이라 불렀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아마도..나는 가장 나쁜 기억인가 보다.
김 신, 그 자에게.


'내 말 들리지'


신의 목소리가 사자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절대로 지금 이 순간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선연해 사자는 주저앉고 싶어졌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데 당췌 몸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아래 힘주어 계단을 오르는 신이 보였다.
구 백년 전 그날 처럼 멈춤 없이 저를 베었던 왕을..아니 저를 향하고 있다.

여 앞에 선 신은 여의 목을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상장군 김신. 폐하를 뵙습니다.
너를 지척에 두고도 못 알아 보았구나.

니가.....왕여..구나."


여의 목을 그러쥔 신의 손에,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가 일었다. 그 어떠한 기억도 없는 여는 신이 가진 분노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 조차 버거웠다. 저를 향한 원망과 분노에 찬 신의 눈빛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작열감을 느끼며 눈을 내려감았다. 가장 아프고 괴로웠을 지난날을 담담히 고백할때 건냈던 위로가 얼마나 덧 없고 어리석은 짓이었는가.

"결국..내가 그 인가..내가 왕여인가...
어리고 어리석은 그 얼굴이 결국..나 인가"


생 지옥같은 1분 1초를 기억하는 자신과 달리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여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라 목을 움껴진 손에 힘을 주었다.

비명도 없고, 애원도 없다.

스스로 지운 기억에 감정만이 오롯이 남아 여를 잠식했다. 지금 제 목이 졸려 숨이 넘어가는 지경에도 자신이 왕여라는 사실만이 남아 여의 눈과 귀를 막았다.

이게 내 벌이구나..
결국 나의 벌은 구 백년 전의 너 처럼 온 마음이 갈기갈기 찣겨 나가는 것이구나..


신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앞에 원수를 당장에 찣어 죽이고 싶었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는 이 저승사자를, 구 백년 불멸의 삶에 얻은 이 우정을 차마 그러할 수 없는 괴리감에 좌절했다.

신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가 마침내 여의 목을 놓아주었다.

"하늘은 마지막까지 네 편이구나."




#




돌아 온 집에는 누구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투닥 거리던 덕화와 은탁도,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신도.

돌아온 저를 왔냐며 늦었다고 맞아 줄 이는 더 이상 이 큰 집에 남아있지 않았다.
익숙한 외로움인데, 지난 삼 백년을 그렇게 지내왔는데 고작 몇 개 월 만에 느껴지는 외로움이 낯설어지다니...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기억을 지운 비겁한 저에게 제법 어울리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용서를 받을 수 도 없겠지만 용서를 바래서도 안되는 거였다.

여는 문 앞에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면서..



#

"끝방 삼촌.."

어깨를 작게 흔들어오는 손짓에 얼굴을 드니 덕화가 걱정이 담긴 눈으로 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이러고 앉아있던거야..
뭐라도 먹긴..하아..잠은 잔거야?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신이 집 근처에도 얼씬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덕화는 폰이 꺼진채 전화도 문자도 연락되지 않는 여의 상태가 걱정이되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제 집을 뛰쳐나온 신은 며칠째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신이 그 지경이니 여의 상태도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 거리에 망자들이 늘었다는 은탁의 얘기가 굉장히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 여가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집은 냉기로 가득했다. 온통 하얀 얼음으로 뒤덮힌 내부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제 목소리를 알아 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여의 얼굴은 정말이지 참혹했다. 얼마나 운 것인지 눈은 뜰 수 없을 만큼 부어올랐고 입술은 색을 잃고 버적버적 갈라져있었다.

"신..은? 그자는..."

이 상황에 먼저 찾는게 김신이라니..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덕화의 손길은 어째서인지 화가 나있었지만 여를 바라 보는 눈에는 근심으로 넘쳤다.

여의 앞에 앉은 덕화는 거칠어진 여의 얼굴을 어루어 만졌다. 더는 울지 말라는듯 눈물 자욱으로 번진 눈가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나의 사자여.."

여는 덕화의 말에 흐느끼며 천천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바닥으로 눈물이 떨어져 번져나갔다. 울지 말래도..

"염라.. "

"이게..결국 네가 원하던 결말인 것이냐. 어찌 그 자를 마음에 품어..이런...이런 너를 보고자 이승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는데...허나 네가 간곡히 원한 일. 그 운명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라. 너의 직무 유기로 많은 망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 또 한 능력을 사사로이 사용하고 명부를 발설하는 죄를 지었다."

"...인정 합니다"

"그에 따라... 차사의 직무를 무기한으로 박탈한다. 따로 기별 할 것이니  그 동안은 허튼생각 말고 이곳에 머무르도록 하라."



"염라...감히..청이 있습니다. 제게..부디.. 기억을 돌려주싶시오. 그 자가, 김 신이.. 저를 죽일 수 있도록..기억을 돌려주싶시오."

염라는 죽고자 기억을 돌려달라 애원하는 여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어루어 만지는 염라의 손길에 퍼석거리던 여의 얼굴과 입술에 윤기가 흘렀다.

어리석은 나의 사자여.. 애 닳고 애 닳은 나의 아이여..
염라는 여의 목을 저에게로 당겨 입술을 맞대었다.

염라의 짧은 입 맞춤과 동시에 지난 육 백년간의 기억이 여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파고 들었다.


잔인한 황명으로 저와 제 나라를 지켜주던 유일한 충신과 제 황후에게 화살과 칼을 내렸고 그 들을 잃고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죄책감에 죽어갔으며 종국에는 현실에서 도망치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건만 지옥에서 조차 잊지 못해 괴로움에 부셔져간 지난 육 백년.

여가 잃어 버린 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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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좀 짧게 마무리 합니다.
슬슬 드라마장면 보다는 망상이 늘어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속도가 영...

염라를 다른분으로 생각하고있다가 덕화 캐릭이 아쉬워 급히 바꾸고 써니의 존재를 지우느라 계속 고치다 보니 오타도 많고 그래요..네..김신이 고추 바사삭이 되는걸 피해보려니 다른 이들이 캐붕..하햐..

상콤한 출근을 위해 이만..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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